고어(古語)에 <천불생무록지인(天不生無祿之人)이요, 지부장무명지초(地不長無名之草)라>는 말이 있듯이, 이 세상 모든 존재가 다 이름을 가졌으며 더구나 「만물(萬物)의 영장(靈長)」이라는 일컫는 인간에 있어서는 이름은 특히 존귀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. 즉 그 자신을 나타내고 대표(代表)하는 것이 이름이며, 가택(家宅)에 비해 볼 때 이름은 대문(大門)과 같고, 사람의 몸에 비해 볼 때 이름은 그 의복과 같은 것이다. 아무리 집이 좋다 하여도 대문이 허술하면 그 집이 좋음은 언뜻 알기 어렵고, 반면에 대문이 훌륭해 보이면 그 집이 결함이 있더라도 첫눈에는 좋게 보이는 것이다. 또 <옷이 날개>란 말이 있듯이, 그 사람의 입은 옷이 훌륭하면 그 인품도 나아보이는 법이다. 물론 지나친 사치는 오히려 인품의 야비함을 나타내는 수도 있지만, 이와 같이 볼 때 양명(良名=좋은 이름)은 인간의 가치를 높이고 운(運)을 조장시키며 악명(惡名=나쁜 이름)은 그가치를 손상시키고 운을 쇠퇴 하게하는 것이다.
속담에도 <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,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.>는 말이 있다. 인생은 백년을 못다 하고 사라지지만, 이름은 남아서 후세에 전하는 것이니, 어찌 사람이 그 이름을 소홀히 취급할 수 있을 것인가. 그러기에 유가(儒家)에서는 <명체불리(名體不離)>라 하였고, 불가(佛家)에 서는<명전기성(名詮其姓>을 말하여 모두 성명의 가치성(價値性)과 그 심원(深遠)함을 인정하였으며, 또 공자도 <선전기명(先詮其名)>이라 하여 이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, 주자(朱子)도 <유명천추(留名千秋)>라 하였으며, 예수도 <귀한자녀에게 재산과 논밭을 주느니 보다 좋은 이름과 건강을 주라>고 가르쳤으니, 옛 성인(聖人)들도 성명에 많은 관심을 보여 주었음을 알 수 있다. 이와 같이 자기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려는 소망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영혼을 깃들게 하고, 또한 그의 불멸(不滅)을 확신함으로써 이 위에 더없는 만족감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. 아무리 집이 좋다 하여도 대문이 허술하면 그 집이 좋음은 언뜻 알기 어렵고, 반면에 대문이 훌륭해 보이면 그 집이 결함이 있더라도 첫눈에는 좋게 보이는 것이다. 또 <옷이 날개>란 말이 있듯이, 그 사람의 입은 옷이 훌륭하면 그 인품도 나아보이는 법이다.
물론 지나친 사치는 오히려 인품의 야비함을 나타내는 수도 있지만, 이와 같이 볼 때 양명(良名=좋은 이름)은 인간의 가치를 높이고 운(運)을 조장시키며 악명(惡名=나쁜 이름)은 그가치를 손상시키고 운을 쇠퇴 하게하는 것이다.
대저, 좋은 이름은 성공과 길운(吉運)을 가져오고, 나쁜 이름은 실패와 불행을 초래하는 것이니, 고금(古今)의 역사상 인물에서 그러한 예를 허다히 찾아 볼 수 있다. 우리의 조상들은 본명(本名) 외에도 아명(兒名)이나 관명(冠名)이나 혹은 아호(雅號)나 하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가졌으나 모두 성명학에 기초하여 중요시하였던 것이다. 성명학은 통계학적(統計學的) 입장에서 체계화 한 것이고, 그 비결은 오랫동안의 경험에서 얻어진 것이다. 이 우주의 모든 존재가 음양(陰陽)과 오행(五行)으로써 생성(生成)하여 존재하고 있는 만큼, 성명학도 그러한 원리에서 출발한 것이다. 따라서 이름은 첫째 부르기 좋고 듣기 좋으며 그 이름에 포함되어 있는 의미가 확실하여 모호 하지 않고 심원(深遠)한 가운데도 우아고상(優雅高尙) 하며 또 웅대(雄大)하여야 함을 원칙으로 한다. 그러나 이름은 인간의 운명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, 선천적 운명이 좋지 않더라도 좋은 이름으로써 그 운세를 호전(好轉)시킬 수 있다는 뜻에서 성명학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.